전부터 가야지 가야지 하고는 결국 전시 마지막 날에야 겨우 찾아 볼 수 있었던 윌리호니스 전. 프랑스에선 국민사진가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라고 하지만만 브레송이나 드와노에 밀려 국내에선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사진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 마는 듯 한 정감있는 사진들에 이끌려 한창 마감때문에 정신 없는 2월의 마지막 날, 그래도 이것만은 놓칠 수 없다라는 심정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햇살이 너무 좋은 봄날 같은 아침, 아니 점심으로 넘어가는 시각. 그래도 시간대로는 오전이라 조금은 한산한 거리. 개장시간에 맞춰 가야지 하고는 서둘렀지만 결국 12시가 다 되어서야 전시장에 도착했다. 전시장으로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조선일보 미술관이다.


시청 광장 근처의 호젓한 뒷골목에 위치한 미술관 바로 옆 성당 건물이 눈에 띈다.




이미 사람들이 꽤 들어 차 있는 전시장. 인터넷에서 출력해간 1000원 할인쿠폰을 내밀자 7000원에 입장권을 준다. 입장시에 한 쪽을 뜯고 주는데 완전한 모양의 한 장이 더 맘에 들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리 좁지는 않은 전시장이었지만 200점이나 되는 사진을 전시하려다 보니 다닥 다닥 붙여 전시를 해 놓아서 동선이 좀 복잡한게 흠이었다. 전시장에는 윌리 호니스가 좋아 했다는 바흐의 곡들이 흘러 나오고 있었지만 주위 잡음에 방해받지 않고 사진 감상에 집중하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꽃고 노다메 칸타빌레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전시를 구경했다. 조금 있으려니 하루 세번 있다는 도슨트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따라 다니며 듣긴 했는데 어찌나 설명이 서툰지 그냥 그냥 참고로 들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빵을 들고 뛰어가는 소년, 부인의 누드, 아들의 비행기 날리는 모습, 일상속의 별로 특이할 것 없는 한 순간 한 순간을 포착하는 파인더속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사진들이었다. 그의 사진이 맘에 드는 것은 자신과 상관없는 타인들의 사진을 찍을 때는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절대로 클로즈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속에서 자신만이 정한 규칙에 의해 포착한 우연의 한 순간을 절묘하게 잡아내는 점이 그의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어떤 부인이 아이를 안고 막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고 있고 마차가 지나가고 가스등을 고치는 남자가 있고 그리고 한 쪽 구석엔 고양이가 그걸 바라 보고 있는 사진이 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그 계단에 앉아 있다가 아이를 안고 내려가는 부인이 마지막 계단을 밟기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자 하고 찍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우연히도 그 장면 속의 모든 인물들이 마치 설정된 것 처럼 한 화면에 어울려 찍혔던 것이다. 그것을 인화하면서 그는 사진 귀퉁이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고양이 한마리가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모든 장면을 콘트롤 하는 감독이었던 것 처럼 고양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식으로 그는 자신만의 규칙에 우연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을 기대하며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전시된 사진의 곳곳에는 그가 한 말들이 적혀있었고 어느 하나 하나 멋지지 않은 구절이 없었다.

"나는 기이한 것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특이한 것들을 좇지 않는다. 내가 찾는 것은 매일 매일 우리의 일상의 가장 평범한 모습 들이다."

"사진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심, 고민, 우연 그리고 시간이다."

"만약 당신이 범상한 사람이라면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웃음에서 햇볕의 한 자락이 내리쬐는 탁자의 꽃병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에서 집위에 드리워진 구름에서 당신은 감동할 수 있다."

그의 사진 중 가장 아름답고도 안타까웠던 사진은 그의 아들 뱅상이 모형 비행기를 날리는 모습을 창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아들 뱅상은 입양아로서 사진속의 그의 모습은 그를 바라 보는 윌리 호니스의 시선이 어떠했는 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듯 아름답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찍혀있었다. 뱅상은 그 후 젊은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윌리 호니스는 이 사진을 찍을 당시엔 정말 행복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들의 죽음 이후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슬퍼져서 제대로 쳐다 볼 수 없어진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사진을 다시 보자. 그렇게 즐겁게 비행기를 날리고 있던 소년의 모습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나의 사진이 이렇게 다른 의미로 다가 올 줄은 미처 몰랐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의 사진 일 수록 클로즈업으로 아름답게 찍어낸 그의 사진은 정직하고 겸손하며 정감어린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는게 스며 나오는 사진들이었다. 마지막 날에라도 전시를 보러 오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마지막으로 30여분간 상영되는 그의 DVD를 구경했다. 전시회 주체인 갤러리 뤼미에르의 관장이 직접 취재한 영상으로 그의 작품세계와 직접 사진속에 등장한 실제 파리의 거리 모습과 오버랩 되는 사진들 그리고 윌리 호니스의 인터뷰 모습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아까 도슨트가 한 설명 대부분이 DVD속에 사진과 함께 나오고 있었다. 먼저 이걸 보고 전시회를 봤어도 됐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DVD 감상은 전시회 마지막에 다리를 쉬며 휴식을 취하며 관람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는데 딱 하나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은 바로 시시 때때로 흘러 나오는 방송. 점심시간 후여서 그런지 갑자기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조선일보 사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절이 끝나고 이제 끝나려니 했더니 2절이 시작된다. 그리고는 거의 10여분 이상을 계속 반복해서 같은 노래를 틀어댄다. "아~~조선일보~ 길이 빛나리~~" 이정도면 거의 고문수준. 영상을 관람하던 관객 모두들 천장의 스피커를 흘깃 흘깃 쳐다보며 짜증을 낸다. DVD는 불어였고 자막으로 모든 내용을 볼 수 있긴 했지만 조선일보 사가를 들으며 보고 싶진 않았다. 거의 패닉이 되기 일보직전에 방송이 멈추었다. 다른 기회에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볼 일이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마지막 하나가 좀 삐끗 하긴 했지만 일에 지친 힘든 일상속에 간만에 좋은 사진과 함께한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전시장을 빠져 나오는 출구에 걸린 사진 한장이 나를 붙잡아 세운다. 긴 복도 끝에 출구가 빛나고 있고 그의 사진찍는 모습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사진.

" 나는 다시 시작할 것이다. 절대로 멈춰서는 안된다. 그것이 비록 매우 위험해 보일 지라도"


Lomo LC-A | Fuji Autoauto 200

2007/03/01 19:37 2007/03/01 19:37
Posted by 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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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쭈니군 2007/03/01 22:26  Modify/Delete  Reply  Address

    ;;;일반적으로도 회사에서 사가를 틀어대는가요? (뭐 신입사원 연수할 때 모 기업에서 사주를 찬양하도록 시켰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음. 여기 저도 가려고 했는데, 결국 못갔네요...^^... 갑작스레 집안일이 생겨서

  3. 신문팔이 2007/03/02 16:22  Modify/Delete  Reply  Address

    10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에요.
    5일이 창간기념일이라 전사원에게
    노래를 주입시키려는 사장님의 음모였죠.
    이틀 연짱 무한반복. 정말 고문이랄 밖에. ㅠ ㅠ
    있지도 않던 애사심이 초고속으로 바닥을 뚫더군요.

    참, 근데 돼지빵은 안주던가요? 제가 갔을땐 뚜레쥬르 돼지빵을 주던데.

    • 박군 2007/03/02 17:50  Modify/Delete  Address

      하하 조선일보 다니시는 분이신가봐요. 들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조선일보랑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 들어도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것만 같은 노래의 반복이었습니다..장소가 장소였던지라 더욱 그랬지요. 덕분에 특이한 경험 한 번 했다 셈 쳤습니다.

      돼지빵이요? 아무것도 안주던데요..발렌타이때는 초콜렛을 받았다는 사람은 있던데..마지막날이라 정신 없었던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