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때문에 설 연휴임에도 고향에는 못 내려가고 그렇다고 일도 손에 안잡히고 해서
아침에 좀 부지런을 떨어 겨우 일어나서는 전부터 가려고 벼르고 있던 탕춘대성에 가보기로 했다.
요즘 한창 열중하고 있는 걷기의 일환으로 서울시내 이런 저런 가 볼만한 산책코스를 탐색하던 중 알아낸 곳이다.
운동삼아 자주 오고 가는 홍제천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조선시대에 세워진 성곽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상명대 근처에 있는 곳이라 걸어서 갔다 돌아오기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우선 자전거를 타고 상명대까지 가서 탕춘대성까지만 걸어가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끌어낸 자전거에 작은 힙색을 걸고 책이랑 노트, 디지탈 카메라등 기본적으로 외출시에 챙기는 것들을 쑤셔 넣은 다음 출발했다. 역시 자전거라 그런지 걸어서 40분정도 걸리던 홍제천 근처의 힐튼호텔까지 15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속도가 나니 바람이 좀 매섭게 느껴지긴 했으나 햇살이 따뜻한 날이었다. 아쉽게도 홍제천을 따라 걸어올라가는 산책로는 여기서 끊어졌다. 어설프게 공사도 안된 길을 자전거를 끌고 조금 올라갔다가 길이 막혀 다시 내려 와야했다.

홍제 고가차도 아래의 산책로. 옆으로 있는 경치 좋은 산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산책로에서 힐튼 호텔이 있는 큰길쪽으로 올라가 홍제고가차도쪽으로 가니 다시 홍제쳔과 이어진 잘 꾸며진 산책로가 시작되었다. 여기가 홍은동인 모양이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생수와 칼로리바 하나를 사서 입에 물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개천을 따라 길이 끝날때 까지 쭉 올라가다 보니 옥천암이라는 암자가 보인다. 서울 한복판에 암자라니 사진만 봐서는 서울인지 모를 것 같은 호젓한 느낌이 든다.
자전거를 세우고 옥천암에 들어가 본다. '백불' 이라는 바위에 새겨진 하얀 불상이 유명한 곳이었는데 조개가루와 금분등을 사용해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불상이었다. 이 바위를 보호하기 위해 누각을 세워 두었는데 이것이 '보도각'이라고 한다. 흥선대원군의 부인이 여기서 고종의 복을 빌었다고 한다. 암자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밖에서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었다. 절 안으로도 들어가 봤지만 딱히 별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은 작은 암자였다. 불당이 잠겨있는 듯 해서 그냥 나왔다.

옥천암 백불

주차된 나의 자전거.

사람이 있어서 정면에선 못찍고 옆에서 살짝 본 백불의 모습

옥천암으로 넘어가는 다리

옥천암 입구

경내
다시 자전거에 올라 조금 올라가니 오늘의 목적지인 탕춘대성과 그 입구인 홍지문이 보인다. 입구에 세워진 설명글을 읽어보니 탕춘대성은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성으로 숙종 41년(1715)에 세워졌다고 한다. 총 4km라고 한다. 홍지문 옆에서 이어진 성벽의 모습이 보였다. 자전거를 근처 주차장에 세워둔 다음 홍지문을 지나 상명대쪽으로 향했다.

홍지문

총지문과 이어진 탕춘대성의 모습
가는 길에 갤러리 쉼 이라는 곳의 간판이 보이길래 한번 들러봤다. 일본에서는 작은 마을에도 사설갤러리나 미술관등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곳을 만나는 것도 반가운 마음에 언덕을 올라가보았다. 외국의 대사가 살 것 같은 멋드러진 건물이었다. 'OPEN'이라는 간판은 나와 있는데 대문은 살짝 잠겨있었다. 열쇠가 꽂힌 상태이길래 열고 들어갔지만 입구는 잠겨있었다. 3층정도되는 갤러리인 모양이다. 그냥 갈까 하고 돌아서려는데 사람이 나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갤러리 쉼
"무슨 일이시죠?"
갤러리에 무슨 일이긴 구경하러 온거지...라고 생각했으나..
"아..지나다가 어떤 건물인가 해서 궁금해서요.."
그러자 아주 엉뚱하다는 얼굴을 하더니
"여긴 미술관이예요. 몇명이신데요?"
미술관인 건 안다구요..
"아 저 혼자예요. 지나다가 궁금해서 들러본건데.."
좀 불편하다는 얼굴로..
"아 오늘은 안여는데.."
그럼 밖에 OPEN은 왜 내건건지..
"OPEN 이라고 되어 있길래 열렸나 하구요.."
"그렇긴 하지만 안열어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나빠져서..
" 그럼 다음에 한 번 다시 들르지요. 수고하세요"
하며 나왔다. 기분좋게 발견한 작은 미술관이라 룰루랄라 하며 들어갔는데 이무슨 문전박대인지..
곳곳에 세워진 간판이 무색했다. 아무리 공짜라고는 하지만 전혀 운영을 할 마음이 없는 듯한 태도.
살짝 맘이 상해서 발길을 돌렸다.
괜히 헛걸음 한 기분에 투덜 거리며 상명대로 올라갔다. 상당히 가파른 언덕으로 캠퍼스내의 버스정류장까지 갔더니 숨을 헉헉 거릴 정도가 되었다. 캠퍼스를 지나 뒷쪽 주자창으로 가면 탕춘대성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했다.
지도도 아니고 그냥 설명으로 된 코스 소개하나 달랑 프린트 해 온거였기에 반은 감을 믿고 걸어올라갔더니 썰렁한 주차장과 산등성이가 보였다. 아직 채 녹지 않은 눈으로 덮여있어서 어디가 길인지도 구분이 안되었다. 대강 사람들이 다녔을법한 길을 찾아 올라갔더니 제대로 올라온 모양인지 사람 다닌 흔적이 보이는 산길이 보이고 조금 더올라가보니 탕춘대성으로 보이는 성곽이 이어진 산길이 나타났다.

상명대 뒷산의 벤치 모습. 곳곳에 벤치가 이정표 처럼 놓여있다.

홀로 뒷산을 지키는 백구의 모습

산으로 올라가자 다시 이정표로 쓰이는 벤치의 모습이.

여기서 부터 탕춘대성이 이어진다.
오른쪽엔 대학 캠퍼스가 보이는 곳에 성곽이 늘어서있고 아무도 없는 그 길을 올라가는 기분이 묘하다. 설연휴 시작 첫날이라 그런지 정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동네 산길치고는 꽤 가파른 길을 이리 저리 나무그루터기를 잡아가며 올라가다 보니 한 두명씩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도 거의 한시간여를 왔기 때문에 너무 많이 걸으면 힘들듯 해서 그냥 꼭대기 까지만 올라가보기로 했다.

꽤나 가파른 편.
서울에 와서 산을 올라가본적은 남산밖에 없었기 때문에 진짜로 흙길을 밟으며 올라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꽤나 운치있는 성곽을 따라 이리 저리 10여분을 올라가다 보니 한 고등학생이 서서 주변을 조망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소년의 발치에 보이는 돌로된 표식이 이곳이 이 산의 정상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꼭대기에 오른 것이다. 멀리 북한산이 보이고 평창동으로 보이은 동네가 펼쳐지고 있었다. 공기가 다르다. 기분이 좋아져서 한 동안 그곳에 서서 아랫동네를 내다보며 숨을 들이켰다.

정상에 오르자 주변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정상이오.

다시 내려가는 길..
원래 예정으로는 가이드에서 소개한 구기터널쪽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자전거가 있기도 하고 해서 그냥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다음에는 자전거 없이 한 번 일주를 해보고 싶은 곳이었다. 오랜만의 산행이기도 했지만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훨씬 미끄러워서 걸음이 상당히 느려졌다. 운동 부족을 절실히 느낀다. 산 타는데는 누구보다 자신있는 나였는데.. 꽤나 힘들었는지 얼굴에서 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온몸이 더워진다. 유산소 운동의 효과는 되고 있는 모양이다.
오랜만에 여행기분을 느껴본 시간이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역시 넓다. 발한번 다른 방향으로 내딛었을 뿐인데 새로운 세상과 조우할 수 있었다. 좀 더 자주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보자.
편도 약8km / 자전거 + 도보 / 소요시간 왕복 3시간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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