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쁘다는 핑계로 홈을 방치한지도 꽤 되는 것 같다. 보통이라면...
바쁘다 -> 일하기 싫어 도피하고 싶다 -> 일은 뒷전이고 홈페이지를 열심히 가꾼다 -> 마감은 다가오고 계속 도피한다.
이런 과정인데..이게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바쁘다 -> 너무 바쁘다 -> 홈이 고 뭐고 마감이 급하다. 모니터 밖에 안보인다. -> 그래도 마감은 다가오는데 도피할 곳도 없으니 그냥 일한다.
이런 과정이 된다.
최근 몇일간이 아래 수준을 넘어서는 상황이었기에 홈페이지는 거의 방치수준이 되고 말았다. 도피할 마음 조차 생기지 않았을 정도로 정신없었던 나날.
바쁠때는 머리속에서 그동안 해야 할 일을 대강 정리해보고 자신이 가능한 최고의 레벨까지 한계를 늘여 어디까지가 가능할지를 가늠 해본다. 몇 일까지는 조금 쉬어도 다음 몇 일 안에는 일처리가 다 가능하다 정도를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다. 마감은 절대로 어기지 않는다라는 모토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마감까지의 일정을 머리속에서 잘 정리하고 내 능력으로 콘트롤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정을 뽑아낸 후 마지막 몇일을 두고 집중하여 모든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해서 일을 처리한다. (이렇게 써 놓으니 상당히 대단한 것 같은데 그냥 마감까지 놀다가 막판에 처리한다라는 걸 미사여구를 이용해 적은 것 뿐이다 -_-)
이랬던 것이 최근 몇 일은 거의 한계를 느껴 위험신호가 올 정도까지 처했었다. 하지만 그 선도 넘고보니 이젠 놀랄정도로 여유가 생긴다. 인간이란 어떤 정도 이상의 계점을 넘으면 궁극의 아드레날린이 발휘되는 모양이다. 일모드로 들어가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빨라지고 단기 집중력도 높아져 이전에 하던 것의 반 정도의 시간에 일을 처리하는 나를 발견하고 놀랐다. 집에서 불이나자 냉장고를 들쳐메고 나오게 되더라 라는 어떤 아줌마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렇게 폭풍같은 몇 일이 지나고 머리속이 멍..해지는 상태가 되자 태풍의 눈같이 갑자기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이기 시작했다. (길가며 콧노래를 부르는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람. 이게 정신병의 초기 증상인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방공호가 필요했다.
비가 주룩 주룩 하염없이 내리던 저녁. 비오는 골목길을 걸어 좋아하는 카페에 들렀다. 바짓가랑이는 비에 젖어 질척거리고 퉁퉁불은 샌들 속의 발은 볼쌍사납게 젖어 있었다. 2인용의 작은 테이블에 스탠드 불을 밝히고 따뜻한 카페라테 거품을 입술로 만져가며 정말로 오랜만에 노트에 낙서를 했다. 크라프트지에 전나무 이파리 색 같은 만년필로 슥슥 그려나가자니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지금의 내 상태가 어찌나 행복하게 느껴지던지. 명치가 따뜻해져왔다. 다음주까지 몇 개나 밀려있는 마감따위는 이미 머리속에서 날아가고 없는 상태. 커피가 줄어 머그잔 바닥이 보일 때 쯤 가게 주인이 새로 들여온 커피추출기에서 뽑은 향이 무지 무지 좋은 커피 한 잔을 서비스로 준다. 전에 맡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향기로운 커피향에 놀라고 약간은 새콤한듯한 끝맛이 최고다. 이미 저녁시간이 지난 시각. 출출한 배를 채우려고 베이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아삭아삭 경쾌한 소리가 나는 양상추를 우물거리며 서비스로 받은 커피마저 다 마신 즈음에는 스프라이트 맛이 나는 스파클 음료가 다시 한 잔 서비스 되었다. 테이블 아래의 발은 이미 보송 보송 말라 딱 좋은 기분. 오랜만에 그린 낙서도 꽤 맘에 드는 느낌으로 완성되었다. 폭풍같은 몇일 속의 해가 뜬 하루 처럼 오늘 카페에서의 2시간은 내게 그런 기분을 주었다.
이런 전쟁터같은 몇일이 지나면 여행을 떠난다.
오늘 같은 몇일이 나를 또 쓰다듬어 주길 바라며 마감하나 해치우고 아침에 잠자리에 든다..
* 이런 나날 속의 '크게휘두르며8권' 신간은 마른 하늘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시합이 끝나서 다행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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