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와의 전쟁 / 2012.1.26 / 메가박스 코엑스 / 8관 / 오후 7시50분
친구가 시사회 표를 양도받아 준 덕에 전부터 보고 싶던 범죄와의 전쟁 시사회를 보게 되었다. VIP시사회라 게스트들도 많이 왔는지 레드카펫도 깔려 있고 5개 관에 걸쳐 시사회가 진행되서 코엑스 메가박스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영화는 제작 과정떄 부터 관심이 갔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부산을 배경으로 최민식, 하정우 투톱에다 조진웅, 마동석 같이 최근 눈독 들이고 있는 쟁쟁한 조연들이 대거 출연한다는데 내가 또 가장 민감해하는 사투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가 나에겐 큰 관심사였다. 잠깐 본 예고편을 봐선 걱정했던 두 조연의 사투리가 그리 나쁘지 않아서 조금 기대를 했다.
내가 경상도 출신이라서 그런지 영화 속에 나오는 비 경상도출신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에 아주 민감해하는 편인데 그 중 최악은 사생결단의 류승범의 연기였다. 원래 류승범의 연기를 좋아하고 별로 악감정 없는 배우지만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사생결단에서의 사투리 연기는 정말 아니었다. 짧은 제작 기간에 사투리 연기를 마스터 하긴 힘들었겠지만 최소한의 노력은 해줬으면 했다. 그게 안된다면 차라리 사투리를 쓰지 않는 설정으로 가던지 그걸 내버려둔 감독의 책임도 컸다고 본다. 덕분에 영화 자체의 재미와는 상관없이 내겐 잊고 싶은 영화 중 하나가 되버린 비운의 영화다.
사투리가 필요한 영화 작업을 할 경우라면 감독이 그 지방 출신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지방 출신의 관객이 보기에 몰입에 방해는 되지 않을 정도의 사투리 연기에 대한 컨트롤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쓸데없는 사투리 연기를 양념으로 집어 넣어 좋은 영화를 망치는가 하는 거다. 범죄와의 전쟁이 처음부터 부산 배경의 조폭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메인 배우 두명이 다 부산 출신이 아니라는 점은 상당히 걸리적 거리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연기 하나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배우들이라 기대를 해봤고 그 기대는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줬다.
감독은 주연 두명 이외의 대부분의 조연을 경상도 출신으로 꼼꼼히 채우는 치밀함을 보였고 그 덕분에 맛깔나는 사투리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조진웅이 연기하는 김판호가 하정우에게 라이터를 내밀며 '아나' 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서울말로는 '옛다'라고 하는 뜻인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대사를 치는 조진웅의 모습에 '이거다!'라는 느낌이 오더라.
두 주연이 100% 완벽한 사투리 연기를 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특히 최민식의 경우 그 많은 대사량을 처리하면서도 중요한 억양의 흐름은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 박수를 주고싶다. 다시는 사투리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진저리를 칠 정도였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상상이 간다. 친구 중에 영화감독이 있어서 왜 꼭 그지방 출신도 아닌 배우를 써야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해당 역을 연기할 배우 중 그 배우의 연기가 가장 나아서 쓸 수밖에 없었다 라는 답변을 들은 적 있다. 최민식의 연기를 보고 나니 비록 최민식이 경상도 출신이 아니더라도 이 사람의 이런 연기를 보기 위해서라면 이 배우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는 그 기대에 부합하는 사투리 연습을 피나게 했고 결과적으로는 어느정도 만족할만한 수준까지는 해냈다고 본다. 술취해 하정우에게 꼬장 부리는 최민식을 보니 그 순간 만큼은 이 배우가 사투리를 연기로 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게 진짜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호텔 사장역을 연기한 김혜은도 좋았다. 부산 출신이라 그런지 누님 분위기 팍팍 풍기며 쫙쫙 붙는 사투리 연기가 일품이더라. 영화 시작 전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있었는데 메인 배우들이 다 와서 인사를 했다. 하정우가 김성균이라는 신인 배우를 소개했다. 머리숱에 고민이 있는지 겨울 흑채 사용법이라는 걸 이야기해주며 관중을 웃겨주었다. 영화속 하정우의 오른팔로 나와 신인답지 않은 인상깊은 연기를 남겼다. 앞으로가 주목된다. 검사 역을 연기한 곽도원이라는 신인배우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는데 뭐랄까 부패한 건 아니지만 드럽게 유세떠는 재수 없는 검사의 전형? 같은 느낌을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하더라. 영화속의 모든 이들이 다들 연기가 아닌 그 인물 자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연기들이 좋았다.

영화는 찌질한 버전의 '대부'다. 실제로 최민식은 하정우및 많은 이들로 부터 '대부님'이라고 불린다. 감독이 정말로 갓파더를 의식해서 그런 설정을 넣었는지는 모르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대부'가 떠오른다. 한 시대를 살아 남는 법을 터득한 어느 남자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 영화가 꽤 길고 중간에 조금 루즈한 타임도 없진 않으나 최근에 본 웰메이드 영화 중 하나라고 감히 꼽고싶다.
요즘 좋은 한국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내가 다 뿌듯하다. 많이 많이 봐줘야겠다는 사명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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