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하는 틈틈히 짬을 내어 한 해 동안 부진했던 영화 관람 횟수를 채워 나가 듯 부지런히 영화를 보러 다니고 있다. 오늘은 서울애니시네마에서 열리고 있는 체코 애니메이션 페스티발에 다녀왔다. 찬 바람도 쐴 겸, 그리고 좋아하는 체코 애니메이션과 함께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남산을 구경하는 것도 좋은 눈요기가 될 것 같았다.


남산 애니메이션센터로 올라가는 길에 로스팅하는 커피숍을 발견했다. 분위기 좋아 보여 들어가고 싶었으나 상영시간이 다되어 일단 테이크아웃으로 라테 한 잔을 샀다. 테이크아웃을 하니 1000원을 할인해준다. 부드럽고 향이 좋다. 핸드드립커피 전문점이라고 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들러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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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 영화는 총 두편. 일반 단편 모음과 [One night in one city] 이라는 제목의 장편이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관객은 달랑 나 혼자였다. 영화관을 전세내듯 두 편 다 혼자 보았다. 별로 기쁘진 않더라만..

- 이후 스포일러 있음.

단편은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체코 애니메이션도 과거의 스타일에서 조금씩 탈피를 해가는 모습이 보여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완성도 있게 마무리된 것은 체코답게 퍼펫애니메이션이었다. [MS. G] 라는 가장 재밌게 본 단편은 늙지 않는 부인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였다. 노년에 부부가 거실 소파에 앉아 앨범을 보며 지난 날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진속의 부인은 지금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 남편은 이미 호호백발의 할아버지인데도 말이다. 결국 그녀는 남자가 어린 시절 주위 악동 친구들의 장난어린 생일선물로 받은 더치와이프였던 것이다. 하지만 둘은 너무도 사랑을 했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 남편을 따라 공기주입구를 열고 천천히 바람을 빼며 죽어가는 더치와이프의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장편역시 퍼펫애니메이션으로 독특한 캐릭터의 인형들이 출연하는 옴니버스 스타일의 영화였다. 을씨년스러우면서 몽환적인 느낌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 이야기 하나 하나가 아이디어도 재미있고 개성이 넘친다. 재밌게 본 에피소드는 음치 악사의 이야기와 나무 이야기였다. 음치인 악사가 떨어진 귀 한쪽을 줍게 되고 자신의 귀대신 이 귀를 달면 음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귀를 바꿔 달아보지만 음치는 고쳐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손이 연필을 잡더니 그림을 마구 그리기 시작한다. 항구의 풍경 도개교의 그림...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다. 알고보니 그 귀는 바로 반 고호의 귀 였던 것! 그 이야기의 발칙함에 피식 웃고 말았다. 또 한편 재밌게 본 것은 나무인간의 이야기. 뭐 나무 인간이 아니라 나무 그 자체를 의인화해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었다. 옆집에는 물고기가 산다. 그는 버끔버끔밖에 말 못하지만 대화는 통한다. 나무와 물고기는 바에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아침인사를 하던 새들이 나무 머리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 바람에 약속시간에 늦어버린다. 나무는 옷을 갖춰입고 화분을 신고 옆집 친구 물고기와 함께 바에 간다. 음료수 두잔을 시키고 물고기는 늘 휴대하는 빨대를 가지고 물을 마시고 나무는 신고있는 화분에 음료수를 부어준다. 가을이 되어 나무의 머리에서 이 지기 시작한다. 거기에 사과 하나가 매달려있고 조심조심 떨어지는 사과를 받아 엄마의 묘를 찾아간다. 가는 길에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자른다.(가지치기) 크리스마스가 되어 나무는 스스로 몸에 전구를 장식해 트리를 만든다. 물고기는 나무에게 새집을 선물한다. 사실 애니메이션 자체는 그냥 코믹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영화 내내 기묘한 느낌의 인물들 이야기 블랙코미디적인 유머등이 뒤섞여 체코애니메이션스러운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세트며 인형의 디테일이며 하나 하나가 장인의 손길이 느껴질듯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 70분이라는 그리 길지 않는 상영시간임에도 저걸 다 어떻게...라는 생각으로 내가 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저렇게 까지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부럽다고 해야하나 샘난다고 해야하나. 배가 아프다고 해야하나.. 복잡한 심정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아까 봐둔 커피집으로 갔다. 아까는 담배를 펴대는 손님들로 가득했는데 이미 가게안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브랜드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라이트, 미디엄, 다크중에 고를 수 있었는데 라이트로 주문했다. 부드러운 첫맛에 끝맛은 약간 새콤. 핸드드립커피는 대부분 진하기 때문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건 부드러워 마시기 편했다. 명동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를 카페쪽으로 부르고 친구는 토스트세트를 주문했다. 버터를 바란 폭신한 빵이 커피와 함께 나왔다. 아메리카노랑 같이 나오는데 아메리카노가 상당히 부드럽고 괜찮은 모양이다. 커피를 그리 즐기지 않는 친구였음에도 커피맛을 칭찬한다. 하루에 좋은 커피집 하나 알아가기. 좋은 영화 만큼이나 뿌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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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9 03:03 2007/11/0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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